시데하라 내각은 1945년 10월 9일부터 1946년 5월 22일까지 존속한 일본의 내각이다.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영향 아래 헌법 개정과 사회 입법에 힘썼으며, 1945년 12월 18일에는 전후 최초의 중의원 해산을 단행했다. 재벌 해체, 공직 추방, 헌법 개정, 전후 복구 및 경제 안정화, 제2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등의 주요 정책을 추진했다. 1946년 4월 10일의 총선거 이후 내각 존속을 시도했으나, 다른 정당의 반발과 각료 이탈로 인해 5월 22일 총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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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10월 9일에 성립된 시데하라 내각은 연합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GHQ/SCAP)의 강력한 영향하에 있었다. 10월 11일, 더글러스 맥아더는 시데하라에게 5대 개혁과 헌법의 자유주의화를 시사했다.(일본의 전후 개혁)
시데하라 내각은 헌법 개정과 사회 입법에 힘쓰는 한편, 종전 4개월 후인 12월 18일에 전후 최초의 중의원 해산을 단행했다. GHQ는 시데하라 내각의 개혁 노력이 소극적이라고 판단하여, 재벌 해체 등의 급진적인 개혁과 전범 체포, 종전 후 첫 총선거 기일 연기 등을 지시했다. 1946년1월 4일에는 공직 추방령이 발포되어 내각 자체가 총사퇴 위기를 맞았으나, 1월 13일 일부 각료를 교체하여 내각은 존속했다.[11] 이 과정에서 내대신부가 폐지되었고, 육군성과 해군성이 폐지되고 제1복원성과 제2복원성이 설치되었다.
헌법 개정 문제에 있어서 시데하라 내각이 당초 작성한 마쓰모토 시안은 기각되었고, 맥아더 초안을 기반으로 하는 「헌법 개정 초고」가 3월 6일에 채택되었다. 이 외에 하이퍼 인플레이션과 식량난 해결을 위한 경제 조치법도 성립되었다.
전후 첫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자 일본에서 여성 참정권이 인정된 첫 남녀 보통 선거로 4월 10일에 제2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었으나, 단독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은 없었다. 일본 진보당에 시데하라가 입당하여 내각을 존속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다른 정당의 반발과 각료 이탈로 5월 22일 총사퇴했다.
시데하라 내각 타도 인민 대회(1946년 4월 7일)
3. 1. 5대 개혁 지시
3. 2. 재벌 해체
3. 3. 공직 추방
3. 4. 헌법 개정
3. 5. 전후 복구 및 경제 안정화
3. 6. 전후 첫 총선거 (제2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4. 비판 및 평가
4. 1. 긍정적 평가
4. 2. 부정적 평가
5. 내각의 종말
1946년 (쇼와 21년) 4월 10일에 실시된 제2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는 전후 첫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자 일본에서 여성 참정권이 용인된 첫 남녀 보통 선거였지만, 단독으로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은 나오지 않았다. 일본 진보당에 시데하라 기주로가 입당함으로써 내각을 존속시키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다른 정당의 맹렬한 반발을 받아 타도 운동으로까지 발전했다. 1946년 4월 7일에는 '시데하라 내각 타도 인민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각료 중에서도 이탈자가 나온 시데하라 내각은 결국 5월 22일에 총사퇴했다. 당초, 후임 총리에는 하토야마 이치로가 취임할 예정이었지만, 공직 추방 대상이 되어 불가능하게 되었고, 대신 요시다 시게루 외상에게 백지 수표가 주어져 제1차 요시다 내각이 성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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